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 <주홍글씨> 2

프로테스탄티즘: 루터(M. Luther)·투빙글리(U. Zwingli)·캘빈(J. Calvin) 등이 주도한 16세기 종교개혁의 중심 사상. 또는 거기서 성립된 모든 교회 신조의 기초가 된 교리.현대의 ‘개신교’에 해당하는 종교주의이자 타락한 로마 가톨릭(구교)을 대체하기 위해 등장한 새로운 종교적 흐름: 항의하는 사람들, 시위하는 사람들(Protestant)인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등장한 기독교 분파교황 레오 10세가 면죄부를 팔고 가장 깨끗해야 할 성직자들은 가장 타락했고 교회의 본질이 흔들리고 로마 가톨릭이 위태로워진 그때 종교개혁자들은 끊임없이 타락했다. 루터는 95개조 반론문을 통해 교회와 교황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칼빈은 예정설을 주장하며 새로운 사회적 흐름을 주도하며 중세 유럽에서는 새로운 바람이 일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알프스 이북 르네상스와 그 과정에서의 종교개혁이다. 당시 유럽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등의 작품으로 구시대적이고 타락한 성직자와 유럽 사회를 비판하는 움직임이 강했다. <주홍글씨>의 상황이 바로 이 과도기에 일어났다. 르네상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 사람들의 사회, 즉 뉴잉글랜드 청교도 사회를 배경으로 헤스터와 딤스데일, 그리고 칠링워드의 작품이 그려졌다. 청교도 사회는 매우 엄격하고 금욕적인 생활을 추구했다. 기본 윤리로 금욕 절제 규율을 내세우기도 했다. 어쩌면 이 사회는 조지 오웰의 1984나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비슷할지도 모른다. 금욕을 추구하고 절제와 규율을 통한 엄격하고 조용한 사회, 즉 전체주의적인 사회와 비슷한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는 종교적 관점의 개입이다. 청교도 사회는 영국 청교도를 배경으로, 그리고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종교와 신, 즉 하나님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예를 들어 청교도의 삶에서 그들은 신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삶을 살았다. 삶의 모든 영역은 하나님의 통치 영역이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온 것이 대표적인 특징이다. 청교도 사회는 종교와 정치를 묶어 생각하는 제정일치 사회이기도 했다. 따라서 종교의 힘이 매우 강함을 느낄 수 있는 사회였다.청교도의 종교적 특징은 그들의 종교생활에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종교적 규율과 도덕적 윤리를 중시했고 그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그러나 극단적인 사회 풍조는 결국 사회 구성원들의 생활에 장애물을 만들기 시작했고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또한 이들은 캘빈의 예정설을 기반으로 모든 합법적인 직업에서 이윤을 얻는 것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고, 이러한 태도는 상공업자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이에 더해 이들은 절약정신과 청수정신을 우선시하고 금욕적인 삶을 살도록 대중을 이끌었다.마지막으로 청교도 사회는 남성 우월주의 사회, 즉 가부장적 사회였다. 여성의 인권과 성평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 1900년대임을 보았을 때, 당연히 당시는 남성의 권위가 높은 시대였다. 이 때문에 청교도 사회는 남성이 중심이 되는 사회였다. 여성은 마녀재판을 당해 숨지거나 간음에 대한 처벌도 여성은 사형에 처해질 정도로 여성의 기본적인 생활환경은 남성에 비해 매우 열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주홍글씨>의 저자 나다니엘 호손은 청교도 신자였지만 <주홍글씨>를 통해 청교도 사회를 비판하고자 했다. 청교도 사회, 그리고 청교도주의라는 이념은 결국 모든 인간은 죄인임을 전제로 하는데, 이로 인해 죄를 억제하기 위해 삶을 옥죄고 즐거움과 쾌락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따라서 호성은 죄를 지을 수는 있지만 이를 비난하거나 미워하기보다는 참회를 통해 죄를 뉘우치고 구원받아야 한다는 신념을 <주홍글씨>라는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였다.그 시기에 유럽에서는 루터와 칼뱅을 중심으로 한 종교개혁 이후 신교를 믿는 것을 지주들이 선택할 수 있었다. 따라서 당시 서양 세계 전반은 신교의 성장이 폭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그렇다면 청교도를 비롯한 프로테스탄티즘은 어떻게 자본주의 발전에 기여했을까. 우선 루터의 95개조 반론문을 통한 종교개혁은 이윤추구를 부정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오히려 자본주의 발전을 억제하는 쪽에 가까웠다. 따라서 칼뱅의 예정설을 기반으로 한 신교 세력이 결국 자본주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윤 추구를 긍정적으로 바라본 칼뱅파는 ‘결정론’을 주장했는데, 이는 유일한 하나님이신 하나님이 미래를 모두 정해 놓고 그 미래를 살면서 자신이 구원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직업 소명설을 주장하며 근면 성실성과 절약 정신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이를 재투자하여 자본주의와 다양한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기본적인 삶의 경제적 틀로 보았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발달은 두 가지 움직임을 불러일으켰는데, 첫째는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으로 대표되는 영국을 포함한 서구와 미국에 영향을 준 친자본주의파의 움직임이다. 현재까지도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와 미국은 개인의 사유재산과 자본적 이익을 극대화하고 인정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둘째, 마르크스의 자본론으로 대표되는 반자본주의파의 움직임이다. 이 움직임은 북유럽 복지국가 모델에 영향을 미쳤는데, 이를 통해 부의 재분배를 통한 사회민주주의적 사회를 건설했다.이처럼 종교는 경제적 흐름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매우 많이 존재한다. 십자군 전쟁도 종교에서 시작됐지만 나중에는 경제적 싸움으로 변질되는 등 종교와 경제는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렇다면 향후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시스템이 도입된 후 종교는, 그리고 그에 따라 경제 변화는 어떻게 이뤄질까.* 다음 글은 <죄와 벌> 후기와 <목적과 수단의 정당화>라는 주제로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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